임권택 감독, 봉준호 감독 / 사진=헤럴드POP DB,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임권택 감독, 봉준호 감독 / 사진=헤럴드POP DB,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POP=안태현 기자] 임권택 감독이 열었던 칸의 꿈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루게 됐다.

2019년은 한국영화에 있어 꽤 의미가 깊은 해다. 지난 1919년 연쇄극(필름으로 영사되는 영상과 연극이 합쳐진 형태) ‘의리적 구토’가 처음으로 상연되고 100년이 되는 해이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해가 된 것.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하게 된 봉준호 감독.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한국영화는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를 넘어, 세계에 우뚝 선 자존심이 됐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가장 먼저 초청된 한국영화는 2000년 제53회 경쟁부문에 올랐던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었다. 본격적으로 한국영화가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의미 있는 해. 한국영화는 그해부터 처음으로 칸 국제영화제의 최고 권위상인 황금종려상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황금종려상까지의 길은 멀고 험했지만 그럼에도 한국영화는 칸 국제영화제에 뚜렷한 족적을 새겨왔다.

지난 2002년, 제5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처음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것. 칸 국제영화제에서 받은 첫 한국영화의 상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이후 한국영화는 꾸준히 칸 국제영화제에 선보여 왔고, 수상의 영광을 이어왔다. 지난 2003년 제5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지난 2007년 제60회에서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송강호, 봉준호 감독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송강호, 봉준호 감독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후 2009년에는 영화 ‘박쥐’로 박찬욱 감독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늘 황금종려상에 대한 열망은 가라앉지 않았다. ‘춘향뎐’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의 포문을 연 뒤 ‘기생충’까지 19년 동안 총 17편의 작품이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다섯 편의 작품이 수상의 영광을 얻었지만 최고 영예 상에 대한 바람은 점점 더 커져간 것.

이러한 열망이 가장 높아진 것은 지난해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초청되면서. 당시 ‘버닝’은 함께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평론가들과 해외언론의 가장 높은 평점을 받는가하면, 영국의 영화 전문 매거진 스크린 데일리의 역대 칸 국제영화제 최고 평점을 기록해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버닝’은 그해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황금종려상에 대한 꿈을 마무리해야했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꾸준히 꿈을 꿨고, 지난 25일 오후 7시 15분(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의 폐막식에서 드디어 그 꿈을 이루는 데에 성공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이룬 것.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은 “12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되게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며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12살의 소년의 꿈, 한국영화 100년사의 꿈, 19년 동안 이어져온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임권택 감독이 열었던 칸의 꿈이 봉준호 감독에게서 이뤄지게 된 순간. 100년의 시간을 달려온 한국영화가 이제 또 다른 100년을 맞으면서 세계 속에서 어떤 자리매김을 하게 될지 기대를 모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