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럴드POP=이미지 기자] 故 최은희가 영면한 지 벌써 7년이 흘렀다.
오늘(16일)은 배우 최은희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되는 날이다.
앞서 故 최은희는 지난 2018년 4월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2006년 4월 11일 남편인 신상옥 감독을 먼저 떠나보내고 건강이 악화됐다. 별세하기 직전까지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故 최은희는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고,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54년 ‘코리아’를 통해 사랑에 빠진 故 신상옥 감독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함께 이끌었다.
고인은 故 신상옥 감독과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 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76년까지 130여편에 출연하며 은막의 스타로 안착했다.
더욱이 한국의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서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
故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故 최은희는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고, 같은 해 7월 故 신상옥 감독도 납북됐다.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17편의 영화를 찍기도 했다.
이후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故 신상옥 감독, 故 최은희는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다. 10년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이처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故 최은희의 평생 한국 영화 발전에 헌신한 공로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