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정수정/사진=H&엔터테인트 제공
[헤럴드POP=이미지 기자] 배우 정수정이 '거미집'을 자신의 터닝 포인트가 될 작품이라고 칭했다.
그룹 에프엑스 출신 정수정은 영화 '거미집'을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한층 더 다지게 됐다.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온 김지운 감독, 배우 송강호와 함께 한 가운데 이들은 정수정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헤럴드POP과의 인터뷰에서 정수정은 '거미집'을 두고 선물 같은 작품이라며 애정을 뽐냈다.
'거미집'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작품.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밀정' 등을 이어 거장 김지운 감독이 내놓은 10번째 장편 영화다. 정수정에게는 첫 상업 영화인 가운데 배우라면 꿈꿨을 김지운 감독의 픽을 받았다. 선배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당당한 호연으로 찬사를 이끌어냈다.
"너무 영광이었다. 감독님은 4~5년 전에 다른 행사에서 뵌 적이 있는데 캐스팅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당연히 출연하고 싶었다. 시나리오 접하기 전에도 뭐가 됐든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 읽고서는 더더 하고 싶었고, 촬영하면서는 너무 좋았다. 감독님도, 선배님들도 편하게 해주셔서 놀이터에 오듯 너무 행복했던 현장이었다."
이어 "그냥 열심히 했다. 선배님들이 아예 어렵게 해주시지 않아서 주눅들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 같다"며 "리딩이나 첫 촬영 때는 어떤 현장에서처럼 긴장이 되기는 하는데 다행히 금방 적응하게끔 모두들 도와주셔서 내 몫을 했다. 감독님이 대놓고 칭찬하는 스타일은 아니시지만, 마음으로 감독님이 만족하시는구나를 알았다. 어느날은 어깨를 토닥이면서 잘했다고 해주셔서 뭉클했다. 촬영 끝나고도 식사 자리에서 '잘해냈고, 네 몫은 다 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영화 '거미집' 스틸
정수정은 극중 영화 '거미집'의 젊은 여공 한유림 역을 맡은 떠오르는 스타 한유림으로 분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김열 감독의 애를 태우다 마지막으로 온 주연배우 한유림은 하루면 된다는 조감독의 거짓말에 속아서 왔다가,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인물이다. 정수정은 한유림을 밉지 않게 표현하기 위해 신경 썼다.
"일단 떠오르는 스타라는 점이 좋았다. 70년대 떠오르는 스타가 되고 싶었다. 평상시에는 징징댈 수 있지만, 연기를 잘하고 싶어 하는 열정에서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얘를 안 밉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했던 것 같다. 촬영하면서도 감독님한테 그런 지점들을 물어봤다. 캐릭터가 너무 짜증내는 거 아니냐, 표정을 많이 쓰는 것 같다고 여쭤봤더니 원래 그런 애고, 일은 열심히 해내는 열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셨다."
더욱이 정수정은 70년대 스타일링을 완벽히 소화, 고혹적인 아름다움으로 스크린을 수놓기도 했다.
"흑백 영화에 출연을 하기는 쉽지 않고, 흔치 않은데 이 영화는 두 가지를 다 경험할 수 있고, 보여드릴 수 있는 거라서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스크린에 나오는 내 모습은 어색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흑백이 더 좋더라. 그 시대 헤어, 메이크업도 너무 해보고 싶었다. 속눈썹도 통으로 붙이고 했는데 난 재밌었다. 맨날 코스튬 입는 느낌이었다. 맨날 할로윈 파티 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 현장이 70년대라 70년대룩을 안 하면 오히려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로 익숙해졌다. 모던한 화장 하면 쌩얼 같고 그랬다. 너무 재밌었다."

배우 정수정/사진=H&엔터테인트 제공
'거미집'은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이에 정수정 역시 생애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특히 '거미집'은 12분이 넘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말로만 듣던 칸국제영화제를 내가 직접 갈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영화 찍는 기분이었다. 다 같이 갔으니 칸국제영화제까지도 '거미집' 리허설 찍는 느낌이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내가 찍고 있구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내 역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순간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영광이었다. 칸이 익숙하신 송강호 선배님께서 리드를 해주셔서 즐기다가 왔다."
에프엑스로 큰 사랑을 받았던 정수정이지만 처음부터 큰 캐릭터를 욕심내기보다 드라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상속자들', '슬기로운 감빵생활', 영화 '애비규환' 등을 통해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송강호 역시 그런 부분을 높이 샀다. 정수정은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야무진 각오를 다졌다.
"사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오디션을 보게 해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합류했고 연기를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는데 재미를 확 느꼈다. 사람들과 다른 에너지를 한곳에 쏟아붓는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때부터 드라마도 조금씩 했는데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 재미보다는 고민이 너무 많았다. 그럴 때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만났고, 느낀게 너무 많았다. 작은 역할이라도 내가 해낼 수 있거나 해보고 싶은 거 위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주인공보다는 임팩트가 더 욕심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내 개인적인 터닝 포인트였다면, '거미집'은 커리어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기회였고,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서 다양한 걸 해보고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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